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드워드 8세 (문단 편집) === 왕세자의 로맨스 === || [navertv(37113777)] || || '''[다큐] 영상의 세기 PREMIUM 제14부 - 운명의 연인들中'''[* 2019년 11월 30일 방송][* 20세기 영상 매체 발명 후 기록된 영상들을 수집하여 역사의 뒷편에서 펼쳐진 대표적인 러브 스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] || [[1917년]]까지 에드워드는 서부 전선에 있는 자신의 연대에서 휴가 기간 동안 [[파리(프랑스)|파리]]에서 파티를 즐겼다. 이때 마거리트 알리버트라는 매춘부를 소개받고, 그녀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한다. 에드워드는 알리버트에게 편지를 썼고, 마거리트는 이것을 계속 보관했다고 한다. 하지만, 약 1년 후 에드워드는 알리버트와 결별했다. [[1923년]]에 알리버트가 사보이 호텔에서 남편을 총으로 살해한 후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, 당시 왕실에서 알리버트의 입에서 에드워드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한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에드워드8세_밸모럴성.jpg|width=100%]]}}} || || [[밸모럴 성]]에서 지인들과 함께.[*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있는 사람이 [[월리스 심프슨]] 부인이다. 에드워드의 바로 옆은 친구/친척인 [[루이 마운트배튼]]과 오른쪽 끝에는 루이의 부인인 [[에드위나 애슐리|에드위나 마운트배튼]]이다.] || 1917년 에드워드는 4대 서덜랜드 공작의 막내 딸인 로즈마리 워드에게 청혼했다. 하지만 로즈마리의 어머니인 서덜랜드 공작부인의 자매가 에드워드 왕세자의 할아버지 [[에드워드 7세]]의 정부였고 공작부인의 남동생은 도박꾼이었다. 때문에 [[조지 5세]]와 [[테크의 메리|메리 왕비]]가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아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다고 한다.[* 그러나 훗날 에드워드 8세가 결혼 문제로 소동을 일으켜 결국 왕위를 포기해 심각한 헌정 위기를 초래한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로즈마리와 결혼하는 것이 나을 뻔 했다.] 당시 에드워드의 복잡한 로맨스와 스캔들은 [[스탠리 볼드윈]] 총리와 아버지인 [[조지 5세]]를 걱정하게 만들었다. 조지 5세는 에드워드가 다른 형제들처럼 결혼해 정착하지 못하고 유부녀와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서, 울화가 터졌는지 "네 놈이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차라리 [[조지 6세|버티]]와 [[엘리자베스 2세|릴리벳]]이[* 버티와 릴리벳은 동생 [[조지 6세]]와 조카 [[엘리자베스 2세]]의 애칭이다.] [[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|왕위를 물려받기를 바란다.]]"는 말을 했다. 그리고 또 다른 말로는 한심한 장남의 꼬라지를 보고 "[[예언|저 애는 12개월도 못 넘기고 왕좌에서 내려올 거야.]]"라고 한탄했다 한다.[* 다만 [[조지 5세]]와 [[에드워드 8세]], [[조지 6세]], [[엘리자베스 2세]]의 개인 보좌관을 지냈었던 토미 레슬스는 조지 5세가 생전에 장남의 왕위 즉위 가능성을 의심했었다는 소문을 부정했다고 한다.] 1929년에 [[타임지]]는 에드워드가 동생 [[조지 6세|요크 공작 앨버트 왕자]]의 아내인 [[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|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]]를 '''"엘리자베스 왕비"'''라고 부르며 놀렸다고 보도했다. 왕비와 여왕은 모두 영어로 'Queen'인데 엘리자베스 공작부인과 이름이 같은 [[엘리자베스 1세]](Queen Elizabeth)에 빗대어 별명을 만든 것이다. 당시 타임지는 "엘리자베스 공작부인은 가끔 에드워드가 조지 5세가 죽은 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것이라고 말한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진실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. 만약 에드워드가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한다면 그녀의 별명이 실현될 것이다"라고 적었는데, 놀랍게도 정확히 7년 후 모두 현실이 되었다. [[1930년]], 조지 5세는 에드워드에게 윈저 그레이트 파크에 있는 포크 벨베데레를 임대해줬다. 이곳에서 에드워드는 프레다 더들린 워드, 델마 퍼니스 등 유부녀들과의 밀회를 즐겼다. 한편, [[월리스 심프슨]] 부인은 1927년 미 해군 장교였던 얼 윈필드 스펜서 주니어와 이혼했고, 두 번째 남편이었던 영국계 미국인 사업가 어니스트 심프슨을 따라 영국에 왔다. 월리스 심프슨은 당시 델마 퍼니스의 소개로 에드워드를 만나게 되었고,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. 당시 유부녀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조지 5세와 에드워드의 관계를 더욱 악화하게 만들었다. 1935년 에드워드는 월리스를 [[버킹엄 궁전]]에 데려와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에게 소개했지만, 두 사람은 월리스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. 당시 에드워드와 미국인 이혼녀의 관계를 비밀리에 조사한 경시청의 보고서에 따르면, 두 사람이 골동품 가게에 방문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가게의 주인이 '''"그 부인이 웨일스 공을 완전히 포로로 손아귀에 넣은 것 같다."'''라고 말했다고 한다. 의심스러운 과거를 가진 미국인 이혼녀가 왕세자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에 내각에서는 우려섞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